12. 동삼동 곰 모양 토우, 웅녀 신화의 고고학적 뿌리
박물관의 한쪽에, 손가락 한 마디 남짓한 작은 흙인형 앞에 섰을 때의 기억을 해 봅니다. 전에 부산 영도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동삼동 유적지 를 다시 찾았을 때, 그저 투박하게 빚어진 이 작은 곰 토우가 우리 민족의 시원인 웅녀 신화를 땅속에서 실체로 끌어올린 위대한 증거라는 사실을 깨닫고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신화' 라고 보기에는, 7천년 전 조상들의 손때 묻은 작은 토우가 보여 주려한 것이 무엇일까. 우리가 잃어버린 고대의 기억이 이 작은 곰의 형상 속에 고스란히 박혀 있음을 직감했습니다.
한반도 신석기 유물을 추적하며 기원전 6000년에서 5000년 사이의 풍요로운 해안 정착지였던 동삼동 패총 에서 발견된 이 유물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우려 온몸으로 경청하고 있습니다.
가. 7천 년 전 흙으로 빚은 곰, 신화의 안개를 걷어내다
동삼동 패총 전시관 의 자료에 따르면, 이곳에서 출토된 곰 모양 토우 는 당시 사람들이 자연에 대해 가졌던 경외심과 풍요에 대한 열망을 종교적 신앙으로 승화시킨 결정체입니다. 그저 아이들의 장난감이 아닐까. 그러나, 저의 생각과 달리 곰 숭배 신앙의 흔적과 정신세계의 흐름을 분석한 고고학적 데이터를 접하고는 제 생각이 얼마나 얄팍했는지 부끄러워졌습니다.
이 곰 토우는 환국에서 배달국으로 이어지는 기술 변천과 문화적 연속성 을 보여주는 핵심 유물입니다. 이는 단순한 진흙 덩이가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곰을 신성한 존재로 여기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투영했던 민족적 기억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핵심 포인트
동삼동 곰 토우는 한반도 신석기인들이 이미 기원전 5000년경에 곰을 토템으로 숭배했음을 보여주며, 이는 삼국유사와 환단고기에 기록된 웅녀 신화의 고고학적 실체입니다.
나. 웅녀 신화는 단순한 상상이 아닙니다
삼국유사 고조선 조에 기록된 환웅과 웅녀의 만남 은 오랫동안 신화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삼동에서 발견된 곰 토우는 이 이야기가 기원전 5000년경 조상들의 실제 삶과 신앙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었음을 알려주려 하고 있었습니다.
이 작은 토우를 보며, 일제 식민사학이 그토록 지우려 했던 우리 고대사의 원형이 땅속에서 묵묵히 살아있었음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그들은 우리 역사를 미개한 부족 사회로 격하시켰지만, 7천 년 전 조상들은 이미 곰이라는 토템을 통해 강력한 공동체 의식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표 1: 곰 토템 신앙의 고고학적 비교]
| 구분 | 동삼동 곰 토우 | 춘천 교동 곰 유구 | 환단고기 기록 |
|---|---|---|---|
| 유물 형태 | 점토제 곰 형상 | 곰 두개골 7점 매납 | 웅녀(熊女) 부족 기록 |
| 추정 시기 | 기원전 5000년경 | 기원전 4000년경 | 배달국 이전 환국 시대 |
| 종교적 의미 | 토템 숭배 및 풍요 기원 | 제사 의례 및 신성 구역 | 천신 신앙과의 결합 |
다. 삼신오제 신앙과 곰 숭배의 연결고리
환단고기 태백일사는 환국으로부터 전해진 삼신상제 신앙이 동북아 창세 문화의 핵심 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는 동삼동의 곰 토우 가 바로 이 삼신 신앙과 토템 신앙 이 조화를 이루던 당시의 종교적 풍경을 보여주는 단서라고 생각합니다.
"환인은 신으로 통치했다(神市)"는 기록은 동삼동의 곰 토우와 조개가면 같은 의례용 유물들을 통해 그 실증성을 얻습니다. 이는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 보이지 않는 하늘의 질서를 땅 위에서 구현하려 했던 조상들의 고귀한 정신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감상 팁
박물관에서 곰 토우를 보실 때 그 표면의 질감을 유심히 살펴보세요. 거친 손길로 빚은 듯하지만, 곰의 특징적인 곡선을 잡아낸 그 정교함에서 7천 년 전 장인이 가졌던 경건한 마음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라. 장식품을 넘어선 종교적 권위의 상징
동삼동 패총 8호 무덤에서 발견된 사슴뿔 관과 옥 장신구 와 함께 곰 토우의 존재는 당시 사회에 종교적 권위를 가진 인물이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이 토우는 마을 전체의 안녕을 비는 제사장의 손에 들려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이는 초기 형태의 계층 사회를 증명하는 또 다른 지표가 됩니다.
이 작은 곰 형상을 바라보며, 7천 년 전 조상들이 가졌던 대지에 대한 신뢰와 공동체에 대한 사랑을 떠올립니다. 비록 지금은 차가운 유리창 안에 갇혀 있지만, 그 안에 담긴 평화와 화합의 에너지는 우리의 역사 속에 여전히 숨쉬고 있음을 다시 마음에 새깁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곰 토우가 왜 이렇게 작게 만들어졌나요?
당시 사람들이 몸에 지니거나 제단에 올리기 편하도록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크기는 작지만 그 상징적 의미는 마을 전체를 아우를 만큼 거대했습니다.
Q2: 곰 토템이 단군조선 이전에 이미 있었나요?
네, 동삼동 곰 토우는 기원전 5000년경의 유물로, 단군조선보다 훨씬 앞선 환국 시대의 안정된 정착 문화 시기부터 곰 숭배가 존재했음을 증명합니다.
Q3: 웅녀 신화와 곰 토우는 어떤 관계인가요?
곰 토우는 웅녀를 조상신으로 모셨던 부족의 실재를 보여주는 고고학적 물증이며, 환단고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이 단순한 허구가 아님을 방증합니다.
마무리
기원전 5000년, 부산 동삼동의 흙으로 빚은 곰 한 마리에는 우리 민족의 끈질긴 생명력과 영적인 깊이가 깃들어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손가락만 한 작은 토우로 남아있지만, 그 안에는 7천 년을 이어온 우리 역사의 자부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만 같습니다.
핵심 정리
- 역사적 시원: 동삼동 곰 토우는 웅녀 신화가 신석기 시대 토템 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입증합니다.
- 신앙의 체계: 삼신오제 신앙과 결합된 초기 종교적 권위의 상징물로 평가됩니다.
- 문명의 연속성: 환국에서 배달국으로 이어지는 우리 민족의 정신적 유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7천 년 전 갯벌에서 곰 토우를 빚으며 부족의 안녕을 빌던 어느 조상의 간절한 손길이 잠시나마 머물다 갔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해 줄 때, 흙 속에 묻혔던 진실은 비로소 우리에게 찬란한 빛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부산 동삼동 패총, 신석기시대 신앙
- 부산광역시 동삼동패총전시관 상설 전시 해설
- 환단고기 삼성기 및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
- 우리역사넷 - 신석기 시대의 매장 풍습과 의례
- 국립중앙박물관 - 한국의 선사 토우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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