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9. 부산 동삼동 패총, 바다가 준 선물과 조개무덤

2026년 1월 1일
수정 2025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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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푸른 바다를 마주하고 영도 해안을 걷다 보면, 발밑에서 바스라지는 흙조차 수만 년의 기억을 머금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1년 전 처음 동삼동 패총 전시관 에 들어섰을 때, 그저 조개껍데기 더미 라고만 생각했던 그 지층이 7천 년 전 조상들의 풍요로운 식탁 이었음을 알게된 때가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된 그 때 온몸에 묘한 전율이 돋았던 기억이 납니다. 켜켜이 쌓인 3.5m의 거대한 시간 층,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대지가 얼마나 오래전부터 우리를 품어왔는지 다시 생각해 봅니다.

신석기 유적들을 추적하며 기원전 7197년부터 시작된 환국 시대정착생활 이 남쪽 해안가에서 얼마나 생동감 넘치는 삶의 현장으로 구현되었는지 느껴 봅니다.


가. 7천년 전의 '미식 기록'이 들려주는 풍요의 노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기록에 따르면, 동삼동 패총 은 단순한 폐기물 퇴적층이 아니라 당시의 생태계와 생활상을 보여주는 타임캡슐입니다. 이곳에서는 굴, 대합, 바지락 등 최소 47종 에 달하는 조개껍데기와 참돔, 농어 등 23종의 물고기 뼈 가 발견되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생존을 위해 아무거나 먹었을 거라 생각했지만, 계절에 따라 최상의 맛을 내는 조개를 골라 채취했던 흔적을 보며 조상들의 섬세한 미식 감각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원전 6000년에서 5000년 사이로 측정되는 동삼동 패총의 연대 는 환국 시대 중기의 안정된 정착 문화를 반영합니다. 조개껍데기의 탄산칼슘 성분 덕분에 인골과 유기물들이 완벽하게 보존된 이 유적은, 7천 년 전 한민족의 건강 상태와 체격까지도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습니다.

핵심 포인트

동삼동 패총 은 신석기 시대 해안 정착민들이 자연의 주기를 완벽히 이해하고 활용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고고학적 증거입니다.


나. 조개껍데기 층위에 담긴 체계적인 식생활 관리

놀랍게도 패총의 층위를 분석해보면 계절별로 채취한 조개의 종류가 뚜렷하게 나뉩니다. 이는 조상들이 조개의 산란기와 독성을 피하는 법을 경험적으로 터득했음을 의미하며, 계획적인 자원 관리를 실천했음을 보여줍니다.

[표 1: 동삼동 패총 계절별 식생활 분석]

계절주요 채취 자원특징 및 용도
대합, 바지락산란기 이전의 높은 영양가 섭취
여름홍합, 전복수온 상승에 따른 어족 자원 다양화
가을참돔, 농어대형 어류 포획 및 저장 준비
겨울굴, 피조개추운 날씨에 대비한 고단백 저장 식품

다. 투박조개 팔찌와 여성의 신분 분화

암사동 유적에서 보이는 사회 조직과 계층화의 징후동삼동의 무덤 에서도 확인됩니다. 특히, 8호 무덤 에서 출토된 여성 인골 에는 투박조개로 만든 정교한 팔찌 가 채워져 있었습니다. 옥 귀걸이 와 함께 발견된 이 장신구들은 단순히 미적인 목적을 넘어, 당시 사회에 이미 성별에 따른 역할 분담과 초기 신분 분화 가 시작되었음을 암시합니다.

이 조개 팔찌를 보며, 환단고기가 기록한 '환인'의 질서 아래 각 부족이 저마다의 예법과 장식 문화를 꽃피웠을 모습을 상상합니다. 특히, 11~12세 어린이 무덤에서 발견된 연옥제 목걸이 와 연결해보면, 신석기 사회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한 신분 체계를 갖추고 있었을 것입니다.

감상 팁

박물관에서 조개 팔찌를 보실 때 그 단면을 유심히 관찰해 보세요. 돌가루를 이용해 표면을 매끄럽게 연마한 흔적 에서 7천 년 전 장인의 고도화된 기술력과 정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라. 일본 규슈산 흑요석이 증명하는 해상 네트워크

동삼동 유적 의 백미는 단연 일본 규슈산 흑요석의 출토 입니다. 백두산 흑요석의 장거리 내륙 교역망 과 더불어, 이 해양 흑요석은 우리 조상들이 거친 바다를 건너 일본 열도와도 활발히 교류했음을 입증합니다. 이는 환국이 대륙의 북방 네트워크 뿐만 아니라 남방의 해양 네트워크 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문명의 교차로 였음을 시사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패총은 정말 쓰레기장인가요?

고고학적으로는 쓰레기장이 맞지만, 유기물을 보존해주는 알칼리성 환경 덕분에 당시의 생활 정보를 완벽히 간직한 '보물창고'로 불립니다.

Q2: 조개 팔찌는 누가 착용했나요?

주로 여성 인골에서 발견되며, 정교함과 재질로 보아 특정 지위를 가진 여성이 착용했던 의례용이나 신분 상징물로 추정됩니다.

Q3: 일본 흑요석이 어떻게 부산까지 왔나요?

당시 사람들은 통나무배를 이용해 대한해협을 건넜을 것으로 보입니다. 암사동 그물추가 증명하는 고도의 항해 및 어로 기술 은 이들이 충분히 바다를 건널 능력이 있었음을 뒷받침합니다.


마무리

부산 동삼동 패총 은 7천 년 전 바다가 우리 조상들에게 건넨 가장 따뜻하고 풍요로운 선물이었습니다. 켜켜이 쌓인 조개껍데기 한 겹 한 겹에는 가족을 위해 정성껏 식탁을 차리고, 자신의 신분을 나타내기 위해 팔찌를 깎던 환국 시대 사람들의 뜨거운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만 같습니다.

핵심 정리

  • 미식의 보고: 47종의 조개류와 다양한 물고기 뼈는 풍요로운 식생활을 증명합니다.
  • 사회적 상징: 조개 팔찌와 장신구는 초기 신분 분화와 성별 역할의 탄생을 보여줍니다.
  • 해양 교역: 일본산 흑요석은 환국 시대의 진취적인 해상 활동과 국제 교류를 증명합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저 드넓은 부산 앞바다 위로, 7천 년 전 조개를 채취하며 미래를 설계하던 조상들의 지혜가 잠시나마 여러분의 마음에 머물다 갔으면 좋겠습니다.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부산 동삼동 패총
  • 우리역사넷 - 신석기 시대의 패총과 생활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 부산 동삼동 패총 발굴 보고서
  • 부산광역시 동삼동패총전시관 상설 전시 해설
  • 국립중앙박물관 - 신석기 장신구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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