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범방동 연옥제 목걸이와 신분의 세습
박물관의 서늘한 느낌의 유리창 너머 아주 작은 인골 옆에 놓인 영롱한 연옥 목걸이를 마주했습니다. 이 유물을 보았을 때는 그저 예쁜 장신구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그것이 11살 어린 아이의 목에 걸려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평등 사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7,000년 전 아이의 차가운 유골 앞에 서서 이 땅의 역사가 생각보다 훨씬 치열하고 복잡하지는 않았을까.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한반도 고대 무덤을 살펴보며 기원전 7197년 환국의 시작 연도 라는 기록이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유물로 증명되는 엄연한 질서의 시대였음을 범방동의 작은 목걸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 11세 아이의 목에서 발견된 7,000년 전의 계급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기록에 따르면, 부산 범방동 조개무지 B피트 12층 아래에서 발견된 토광묘에는 신장 130~140cm 정도의 11~12세 어린이 인골이 안치되어 있었습니다. 놀라운 점은 이 어린 아이의 부장품으로 연옥제 목걸이가 출토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처음에는 아이가 직접 만든 장신구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연옥이라는 귀한 재료의 희소성을 알고 나니 제 생각이 얼마나 얄팍했는지 부끄러워졌습니다.
이 목걸이는 춘천 교동에서 출토된 실사용이 불가능한 대형 도끼** 와 마찬가지로, 당시 사회에 이미 강력한 권위와 신분 질서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입니다. 11세 아이가 스스로의 노동으로 연옥을 구하고 가공했을 리 없기에, 이는 명백히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세습된 신분'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핵심 포인트
범방동의 연옥 목걸이는 신석기 시대가 완전한 평등 사회였다는 통념을 깨뜨리며, 환국 시대에 이미 재산과 신분의 세습이 시작되었음을 입증하는 유물입니다.
나. 스스로 얻을 수 없는 '부'의 대물림
옥 목걸이 하나를 연마하는 데는 숙련된 장인의 수십 시간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우리역사넷의 기록에 따르면 연옥은 백두산 등 특정 산지에서만 구할 수 있는 귀한 자원이었기에, 이를 소유했다는 것은 장거리 교역을 독점할 수 있는 권력이 있었음을 뜻합니다.
[표 1: 범방동 어린이 무덤 분석]
| 구분 | 세부 내용 | 고고학적 의미 |
|---|---|---|
| 인골 특징 | 11~12세, 신장 130~140cm | 성인 이전의 어린 나이 |
| 주요 부장품 | 연옥제 목걸이, 골각기 | 귀중품을 소지한 특수 신분 |
| 사회 구조 | 재산 및 신분 세습의 징후 | 환국 시대 계층 분화의 증거 |
암사동 유적의 3배 이상 차이 나는 주거지 면적 과 결합하여 볼 때, 범방동의 아이는 아마도 그 마을 지도자나 제사장의 자녀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다. 패총 속에 숨겨진 고도의 보존 과학
범방동의 인골이 7,000년이라는 긴 시간을 견디고 우리에게 발견될 수 있었던 비밀은 바로 조개무덤에 있습니다. 조개껍데기의 탄산칼슘 성분으로 인한 인골 보존 덕분에 산성 토양인 한반도에서도 뼈가 썩지 않고 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7,000년 전 조상들이 죽은 자를 패총에 묻은 것이 단순히 쓰레기장에 버린 것이 아니라, 시신을 보존하려는 의도적인 지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놀라운 조상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감상 팁
박물관에서 어린이 유골과 부장품을 보실 때 장신구의 재질을 확인해보세요. 만약 조개가 아니라 연옥이나 흑요석 같은 외래 석재라면, 그것은 당시 최고의 권력과 연결된 귀족 가문의 흔적일 확률이 높습니다 .
라. 환단고기 기록과 고고학적 데이터의 교차
환단고기 삼성기는 환국이 7대 환인에 의해 다스려진 조직화된 국가였다고 전합니다. 주류 학계는 이를 부정하지만, 범방동의 연옥 목걸이나 부산 동삼동 패총에서 발견된 투박조개 팔찌 같은 유물들은 당시 사회가 이미 고도의 신분 질서를 갖추고 있었음을 묵묵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어린 아이에게 왜 귀한 옥을 넣어주었나요?
아이가 죽어서도 생전의 고귀한 신분과 가문의 권위를 유지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과 사회적 질서가 반영된 것입니다.
Q2: 연옥은 어디서 온 것인가요?
성분 분석 결과 백두산이나 경상도 산지 등 원거리에서 교역을 통해 유입된 것으로 밝혀졌으며, 이는 당시 교역망이 상당했음을 보여줍니다.
Q3: 신석기 시대는 평등한 사회 아니었나요?
범방동과 암사동의 사례처럼 초기 형태의 계층화와 신분 세습의 증거가 계속 발견되면서, 평등 사회라는 통념은 재검토되고 있습니다.
마무리
범방동의 작은 연옥 목걸이는 7,000년 전 어린 아이의 슬픈 죽음과 함께, 우리가 잊고 지냈던 환국 시대의 정교한 사회 질서를 보여줍니다. 한 명의 어린 생명을 위해 귀한 옥을 깎아 부장했던 그 마음 속에는 단순히 부모의 사랑을 넘어, 가문의 영광과 질서를 지키려 했던 고대인들의 의지가 서려 있는 것을 느껴 봅니다.
핵심 정리
신분 세습 어린 아이의 옥 목걸이는 재산과 지위가 대물림되었음을 증명합니다.
사회적 위계 부장품의 차이는 환국 시대에 이미 계층 분화가 시작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보존의 지혜 패총의 알칼리성 환경을 이용한 매장 방식은 당시의 고도화된 생활 지혜입니다.
우리가 마주한 이 작은 돌조각이 7,000년 전 어느 아이의 목에서 빛났을 때의 엄숙함을 기억하며, 우리 역사의 뿌리가 얼마나 단단하고 깊었는지 다시 한번 되새겨보시기를 바랍니다.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범방동 패총, 부장품
- 우리역사넷 - 신석기 시대의 매장 풍습과 사회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 부산 동삼동 패총 유물 현황
- 환단고기 삼성기 및 태백일사
- 국립중앙박물관 신석기실 장신구 연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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