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암사동 그물추, 한강을 터전으로 삼은 어로 생활
해가 저무는 한강 변을 걷다 보면, 강물 위로 부서지는 노을이 마치 7천 년 전 누군가가 던졌을 그물의 파동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예전에는 박물관에서 본 그물추 들이 그저 흔하디 흔한 조약돌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 투박한 돌로된 그물추 속에 가족의 끼니를 걱정했던 어느 가장의 간절함이 배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강바람마저 따뜻한 무언가가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딛고 있는 이 터전이 얼마나 오래전부터 우리를 품어왔는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이제 암사동의 유물 들을 들여다보며 기원전 7197년 환국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정착의 역사가 한강이라는 풍요로운 물줄기를 만나 어떻게 구체적인 삶의 형태로 정착했는지 체감하고 있습니다.
가. 한강의 물결 속에 숨겨진 7천 년 전의 치열한 삶
우리역사넷의 기록에 따르면, 서울 암사동 유적 은 한강 주변에 위치하여 고기잡이를 중심으로 한 어로 생활이 주된 생계 수단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발견된 그물추는 매우 많은 양이 출토되었는데, 이는 당시에 물고기잡이가 얼마나 조직적이고 활발했는지를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입니다. 사실 단순히 낚시 수준일 거라 생각했지만, 출토된 유물의 양을 보고는 당시 한강이 말 그대로 거대한 식량 창고였음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기원전 4000년에서 3000년경으로 추정되는 암사동의 연대 를 고려할 때, 이 시기 사람들은 이미 강의 흐름과 물고기의 습성을 완벽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물추는 작은 강돌의 양쪽 끝을 깨뜨려 홈을 낸 단순한 형태지만, 그 안에는 물살의 저항을 계산하고 그물을 가라앉히기 위한 고도의 생존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핵심 포인트
암사동에서 대량으로 출토된 그물추는 어로 활동 이 단순한 보조 수단이 아니라, 대규모 정착 공동체 를 유지하기 위한 핵심적인 경제 기반이었음을 입증합니다.
나. 보이지 않는 섬유와 보이는 돌의 조화
놀랍게도 실제 그물은 세월에 썩어 없어졌지만, 토기에 남은 흔적이 그 존재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동삼동 패총 빗살무늬토기 표면에 찍힌 그물 흔적 은 당시 그물 제작 기술이 매우 정교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단서입니다. 그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식물 섬유를 꼬아 실을 만들고 일정한 간격으로 매듭을 짓는 복잡한 공정이 필요한데, 이는 환단고기 신사기 에서 '비서갑' 이 길쌈 을 맡았다는 기록과 묘하게 겹쳐 보입니다.
[표 1: 신석기 어로 도구의 종류와 기능]
| 구분 | 주요 유물 | 특징 및 용도 |
|---|---|---|
| 그물추 | 홈파인 강자갈 | 그물을 수중으로 가라앉히는 역할 |
| 작살 | 사슴뿔 가공품 | 대형 어류나 해양 동물을 찌르는 용도 |
| 낚싯바늘 | 뼈나 돌 가공 | 개별 어류를 낚는 정교한 도구 |
| 토기 | 빗살무늬토기 | 잡은 물고기를 삶거나 저장하는 용도 |
감상 팁
박물관에서 그물추 를 보실 때 돌의 크기와 무게가 제각각인 것을 확인해 보세요. 이는 투망용, 저인망용 등 그물의 종류와 잡으려는 물고기의 크기에 따라 무게를 조절 했던 조상들의 섬세한 설계 입니다.
다. 어로 생활이 가져온 정착의 안정감과 문명의 발전
강은 단순히 먹을거리만 준 것이 아니라 정착을 가능하게 한 가장 큰 힘이었습니다. 7천 년 전 온난화로 인해 해수면이 상승하고 식생이 풍부해진 환경 속에서 한강 변의 어로 생활은 수렵보다 훨씬 안정적인 칼로리 공급원이 되었습니다. 암사동 유적에서 발견된 화덕자리와 불에 탄 도토리는 이렇게 잡은 물고기를 환인의 가르침대로 불에 익혀 먹으며 문명을 꽃피웠던 당시의 풍경을 짐작게 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암사동의 풍부한 어로 자원은 인구 증가를 불러왔고 이는 곧 사회 조직의 복잡화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그물 한 코 한 코를 꿰매던 그 정성이 결국 거대한 부족 연맹체인 환국의 기틀이 되었을 것이라 믿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신석기 시대 그물은 무엇으로 만들었나요?
주로 마, 삼, 칡과 같은 식물 섬유를 꼬아서 만들었으며, 가락바퀴와 바늘이 함께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실을 뽑고 꿰매는 기술이 상당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Q2: 한강에서 주로 어떤 물고기를 잡았나요?
암사동 주변의 자연환경으로 보아 잉어, 붕어, 메기 등 민물고기가 주를 이루었으며, 계절에 따라 거슬러 올라오는 회귀성 어종도 주요 포획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Q3: 그물추가 왜 그렇게 많이 발견되나요?
어로 활동이 매일 이루어지는 일상이었고, 그물이 찢어지거나 유실될 때 그물추도 함께 버려지거나 유실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대량으로 발견되는 것입니다.
마무리
한강의 거친 물살을 견디며 그물 을 던졌던 7천 년 전의 손길 은 오늘날 우리 삶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암사동의 작은 그물추 하나에는 자연과 공존하며 정착의 꿈을 일구었던 환국 시대 조상들의 뜨거운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만 같아 마음이 묵직해집니다.
핵심 정리:
- 생존의 도구: 그물추의 대량 출토는 어로가 암사동 공동체의 주 생계 수단이었음을 증명합니다.
- 기술의 정수: 섬유 제작과 그물 짜기 기술은 직물 문명으로 나아가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 문명의 기반: 풍부한 어족 자원은 안정적인 정착과 인구 증가를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하는 한강의 물결 위로, 7천 년 전 그물을 던지던 조상의 진취적인 기상이 잠시나마 여러분의 마음에 머물다 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잊고 지냈던 이 평범한 돌덩이의 가치를 기억할 때, 비로소 우리 역사의 진실은 다시 숨 쉬기 시작할 것입니다.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서울 암사동 유적, 신석기시대 어로
- 우리역사넷 - 신석기 시대의 생활과 도구
- 국립중앙박물관 - 암사동 발굴 보고서 및 전시 해설
- 환단고기 신사기 치화기
- 강동문화포털 - 서울 암사동 유적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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