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서울 암사동 움집, 설계된 정착과 공동체 생활
서울 암사동 유적지의 움집 안으로 처음 들어갔을 때, 7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묘한 기류를 느꼈습니다. 사실 그냥 땅을 판 구멍에 지붕을 올린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막상 그 안에서 느껴지는 서늘하면서도 포근한 공기는 제 선입견을 여실히 깨트려 놓았습니다. '미개한 원시인'이라 생각했던 제가 무색해질 정도로, 암사동 움집에는 당시 사람들의 치밀한 설계와 공동체적 배려가 아랫목 구들장처럼 마음을 따땃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암사동의 집터들을 연구하며 이곳이 단순한 거주지를 넘어 하나의 계획된 도시 국가의 원형이었다는 사실에 전율하고 있습니다. 기원전 4000년에서 3000년경으로 측정되는 암사동 유적의 연대 는 환국 말기의 번영과 정확히 겹치며 우리 조상들의 정착 생활이 얼마나 고도화되었는지 증언합니다.
가. 과학적 설계가 돋보이는 신석기 정착 주거
우리역사넷의 자료에 따르면, 암사동 움집은 바닥을 70~100cm 깊이로 판 반지하 구조로 설계되었습니다. 이는 지열을 이용하여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고도의 과학적 지혜가 담긴 결과물입니다. 처음에는 불편했을 거라 생각했지만, 중앙에 놓인 화덕과 4주식 기둥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현대의 건축 설계 못지않은 안정감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환인이 돌을 쳐 불을 내어 조리하는 법을 가르쳤다는 기록 은 암사동 움집 중앙에서 발견된 화덕 자리 를 통해 그 실체가 증명됩니다. 화덕 주변에서 발견된 탄화된 도토리와 빗살무늬토기 조각들은 7천 년 전 사람들이 이미 불을 완벽히 제어하며 풍요로운 식생활을 영위했음을 보여줍니다.
핵심 포인트
암사동 움집은 단순한 피신처가 아니라, 지열을 활용한 온도 조절 과 저장 시설 을 갖춘 체계적인 정착 주거지였습니다.
암사동 유적의 대규모 마을 구조
- 마을 규모: 현재까지 확인된 집자리만 40여 기이며, 전체 규모는 100여 기 이상의 대규모 집단 취락지로 추정됩니다.
- 계획된 배치: 집들이 2~3기씩 모여 있는 양상은 혈연 중심의 씨족 사회가 어떻게 조직되었는지 보여줍니다.
- 공동 시설: 야외 화덕자리와 돌무지 시설은 토기를 굽거나 음식을 대량으로 장만하던 공동체 활동의 흔적입니다.
나. 사회 조직의 서막과 초기 계층 분화
암사동 유적에서 발견된 집자리 크기의 확연한 차이 는 약 15~50㎡로 최대 3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이는 단순히 가족 수의 차이를 넘어, 마을 내에서 역할 분담과 초기 신분 분화가 시작되었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환단고기가 말하는 '환인'이라는 통치자 아래 조직화된 사회가 형성되고 있었음을 고고학적 데이터가 뒷받침하고 있는 셈입니다.
[표 1: 암사동 움집 규모 분석]
| 유형 | 면적 (㎡) | 거주 추정 인원 | 특징 |
|---|---|---|---|
| 소형 움집 | 약 15 | 2~3명 | 일반 주거용 |
| 중형 움집 | 약 30 | 4~5명 | 일반 가족 단위 |
| 대형 움집 | 약 50 | 6명 이상 | 지도자 거처 또는 공동체 시설 |
감상 팁
암사동 유적지를 방문하시면 움집 바닥에 거꾸로 박힌 토기 시설을 찾아보세요. 이는 불씨를 보관하거나 곡물을 저장하던 신석기인들의 독특한 저장 기술 입니다.
다. 마을 지도자와 공동체 규율의 탄생
암사동 유적 의 방대한 규모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조율자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춘천 교동에서 발견된 의례용 대형 도끼 와 같은 상징물은 당시 사회에 제사장이나 지도자와 같은 권위 있는 인물이 존재했음을 암시합니다. 정착 생활이 시작되면서 혼인과 교역을 통한 부족 간의 결합도 더욱 활발해졌을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움집은 여름에 덥지 않았나요? 반지하 구조 덕분에 바깥 공기보다 온도 변화가 적어 여름에는 오히려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천연 에어컨 같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Q2: 암사동에 몇 명이나 살았을까요? 집자리 40여 기를 기준으로 최소 80명에서 최대 240명 정도가 거주한 것으로 추정되는 신석기 시대 최대의 집단 마을입니다.
Q3: 왜 남향으로 집을 지었나요? 햇빛을 최대한 많이 받고 겨울의 차가운 북풍을 피하기 위한 조상들의 지혜로운 설계였습니다.
마무리
서울 암사동 움집은 7천 년 전 우리 조상들이 이룩한 고도의 정착 문명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박물관입니다. 둥근 집터 하나하나에 새겨진 삶의 흔적들은 우리가 단순히 생존을 넘어 얼마나 지혜롭게 자연과 공존하며 공동체를 일구어왔는지 전해줍니다.
핵심 정리:
- 과학적 주거: 지열 활용과 화덕 배치 등 정밀한 설계가 돋보입니다.
- 조직된 사회: 대규모 마을 형성과 집터 크기 차이는 초기 사회 조직의 증거입니다.
- 계승된 지혜: 환국 시대의 불 사용과 조리 문화가 정착 생활에 완벽히 녹아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안락한 집의 원형이 바로 이곳, 암사동의 흙바닥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조상들의 지혜에 깊은 감사를 전해봅니다.
참고 자료
- 우리역사넷 - 서울 암사동 유적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신석기시대
- 강동문화포털 - 암사동 유적 가이드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 암사동 유적
- 환단고기 삼성기 및 태백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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