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24. 적석총과 고인돌, 한민족 거석 문화의 자부심

2026년 1월 13일
수정 2026년 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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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고인돌의 덮개돌 아래 가만히 서 있으면, 수천 년의 시간을 견뎌온 차가운 바위의 질감이 제 손끝을 타고 전해져 가슴으로 무언가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예전에는 고인돌이 그저 선사 시대의 흔한 무덤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우리 땅에 전 세계 고인돌의 절반이 넘는 4만여 기가 밀집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순간 제가 가졌던 무관심이 조금은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멀게만 아니 특별한 느낌없는 '고대의 무덤들'의 수십 톤의 바위 무게 앞에 저는 한 없이 작아지는 느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7천년 전 우리 조상들이 가졌던 거대한 의지와 조직력이 갖는 웅장함을 느낍니다.

벌써 수개월째 한반도 거석 문화의 뿌리를 추적하며 기원전 7197년부터 시작된 환국의 역사 속에 잉태되었던 거석 문화가 어떻게 한반도에서 고인돌이라는 찬란한 꽃을 피웠는지에 대해 깊은 경외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가. 전 세계 고인돌의 절반, 한반도에 깃든 거인의 숨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기록에 따르면, 한반도는 전 세계 고인돌의 50% 이상인 약 4만여 기가 집중된 '고인돌의 왕국' 이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강화 부근리나 화순 대신리 등지에서 발견되는 고인돌들은 단순히 돌을 쌓은 것이 아니라, 고도의 천문 지식과 종교적 신념이 결합된 결정체입니다. 7대 환인이 다스렸던 3,301년의 기간 동안 축적된 공동체의 단결력이 없었다면, 수십 톤에 달하는 바위를 수 킬로미터 밖에서 운반해 세우는 일은 결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핵심 포인트

한반도의 고인돌은 단순한 무덤을 넘어, 우리의 암묵적 역사 속의 한민족의 시작인 환국과 배달국으로 이어지는 강력한 국가 체제와 조직화된 노동력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물증입니다.


나. 홍산의 적석총에서 시작된 거석의 계보

요하 유역에서 발견된 홍산문화의 정교한 옥기와 대규모 제단 속의 적석총(돌무지무덤)이 우리 고인돌 문화의 원형이라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우하량 유적의 적석총은 조상 숭배와 정치적 권위가 결합된 형태인데, 이것이 남하하여 한반도의 지석묘 체계로 발전했다는 분석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표 1: 시대별 및 지역별 거석 유적 특징 비교]

구분홍산문화 적석총한반도 고인돌이집트 피라미드 (비교)
핵심 시기기원전 4700~2900년기원전 2000년경 본격화기원전 2500년경 (쿠푸 왕)
주요 형태돌을 쌓아 만든 적석단거대한 덮개돌을 얹은 지석묘230만 개의 석재 블록
상징성제천 의식 및 조상 숭배정치적 권위 및 사후 세계왕의 절대 권력 및 영생

다. 수십 톤의 바위를 움직인 조직화된 힘

현재까지 밝혀진 역사와는 다른 환단고기에 의하면 기원전 3898년 환웅이 세운 신시의 건설 이후, 우리 사회는 더욱 복잡하고 정교한 행정 체계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고인돌 하나를 축조하기 위해 수백 명의 성인이 동원되어야 했다는 점은, 당시 배달국 사회가 이미 강력한 지도력을 바탕으로 대규모 인력을 효율적으로 운배할 수 있는 '국가 수준'의 조직력을 갖추었음을 웅변합니다.

강원도 춘천 중도 유적에서 발견된 적석단의 정밀한 방위 측정 기록을 보면, 당시 조상들이 하늘의 별자리를 읽어 내며 거석을 배치했음을 알 수 있는 일부분이 있습니다. 마치 거대한 바위가 땅에 뿌리 내린 별자리처럼, 고인돌은 조상들의 지혜와 자부심을 오늘날까지 더 발굴할 것이 많음을 조용히 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감상 팁

박물관에서 고인돌 유물을 보실 때 덮개돌의 크기뿐만 아니라 그 아래를 고이고 있는 고임돌의 균형을 유심히 보세요. 수십 톤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계산된 설계는 당시의 공학 기술이 결코 원시적이지 않았음을 증명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고인돌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문화인가요? 네, 거석 문화는 세계 곳곳에 있지만, 한반도처럼 좁은 면적에 수만 기가 밀집된 사례는 유일합니다. 이는 당시 한반도가 인류 문명의 핵심 중심지 중 하나였음을 시사합니다.

Q2: 고인돌 축조 시기와 환국 시대가 일치하나요? 학계에서 측정된 고인돌의 주된 시기는 기원전 2000년경부터이지만, 적석총의 연원을 따라가면 환국 후기인 홍산문화(기원전 47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Q3: 고인돌을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필요했나요? 덮개돌의 무게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톤당 10~20명의 인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수십 톤의 고인돌을 세우기 위해서는 최소 수백 명의 조직적인 협동이 필수적이었습니다.

마무리

한반도의 고인돌과 적석총은 잃어버린 환국과 배달국의 실체를 보여주는 듯한 거대한 증언자들입니다. 조상을 숭배하고 하늘과 소통하려 했던 그들의 간절한 마음이 바위마다 깃들어 있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벅찬 자부심을 일깨워 줍니다.

핵심 정리

압도적 규모: 세계 고인돌의 절반이 한반도에 분포하여 거석 문화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연속성: 홍산문화의 적석총에서 시작된 전통이 고인돌로 이어지며 한민족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듯이 보여 줍니다. 국가 체제: 대규모 노동력 동원은 환국과 배달국이라는 강력한 사회 조직이 실재했음을 증명합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하는 이 무거운 바위 조각들이 사실은 수천 년 전 조상들이 후손들에게 보낸 거대한 타임캡슐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돌 아래 잠든 숨결을 더 많은 조사와 발굴로 조상의 정기를 느낄 때, 비로소 우리의 역사는 박제된 기록을 넘어 뜨겁게 박동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고인돌, 적석총
  • 환단고기 태백일사 및 삼성기
  • 우리역사넷 - 청동기 시대 거석 문화와 지석묘
  • 국립중앙박물관 - 고인돌 유적 발굴 보고서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 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 유적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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