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7. 황해도 지탑리 돌보습과 본격적 농경의 증거

2026년 1월 3일
수정 2026년 1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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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한적한 전시실. 유리 너머, 투박하게 깎인 커다란 돌덩이 하나를 마주했습니다. 이 '돌보습' 이라는 유물을 보았을 때는 그저 무거운 돌덩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날카로웠던 날 부분이 흙과의 마찰로 닳아 반질반질해진 흔적을 본 순간 '7천 년 전의 노동' - 수만 번 땅을 갈았을 조상들의 거친 손마디와 이제는 겹쳐 보입니다. 이 터전에 생존의 기록이 얼마나 치열했을까,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한반도 고대 농경의 흔적을 추적하며 기원전 7197년부터 시작된 환국 시대의 정착 생활 이 단순한 채집을 넘어 본격적인 '생산 경제' 로 진입했음을 황해도 지탑리 유적을 통해 진실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가. 땅을 일구던 조상의 집념, 돌보습의 발견

우리역사넷의 기록에 따르면, 황해도 봉산 지탑리 유적에서 발견된 돌보습 은 당시 농경 기술이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물증입니다. 돌보습은 오늘날의 쟁기 날에 해당하는 도구로, 땅을 깊게 갈아엎어 씨를 뿌릴 준비를 하는 데 쓰였습니다. 놀랍게도 지탑리에서 출토된 돌보습은 길이가 30~40cm에 달하며, 가장 큰 것은 무려 길이 65.5cm, 너비 24cm라는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합니다.

사실 처음에는 이 무거운 돌을 어떻게 휘둘렀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날 부분에 선명하게 남은 마모 흔적과 긁힌 자국들 을 보며 제 의구심은 경외감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전시용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흙을 파헤치며 치열하게 사용되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암사동 유적에서 발견된 정착의 흔적 과 연결해볼 때, 이러한 대형 농기구의 등장은 이미 공동체 단위의 조직적인 경작이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핵심 포인트

지탑리 돌보습의 날에 새겨진 마모 흔적은 기원전 3500년 이전 이미 한반도에서 인력을 이용해 땅을 가는 본격적인 농경이 행해졌음을 증명합니다.


나. 탄화 곡물이 들려주는 풍요의 기록

지탑리 유적의 가치는 단순히 도구에만 있지 않습니다. 우리역사넷 자료에 의하면, 이곳에서는 피나 조로 추정되는 탄화 곡물 이 함께 발굴되었습니다. 이는 빗살무늬토기와 갈판, 갈돌이 증명하는 7천 년 전 농경 이 실제 수확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입니다.

[표 1: 지탑리 유적 농경 관련 출토 유물 현황]

구분유물 명칭주요 특징 및 고고학적 의미
경작 도구돌보습최대 길이 65.5cm, 실제 마모 흔적 뚜렷 (본격 농경)
수확 도구돌낫곡물 이삭을 자르는 도구 (수확 기술 발달)
가공 도구갈돌과 갈판곡물의 껍질을 벗기고 가루로 만듦 (식생활 혁명)
생산물탄화 곡물조, 피 등 잡곡류 확인 (재배 작물 실체 입증)

이처럼 "재배-수확-가공" 의 전체 과정이 한 유적지에서 확인된 것은 매우 드문 사례입니다. 7천년 전 조상들이 수확한 곡물을 갈판에 갈며 가족의 식사를 준비했을 따뜻한 풍경을 상상하곤 합니다. 그들의 삶은 젖은 솜이불처럼 무거운 노동의 연속이었겠지만, 수확의 기쁨만큼은 우리 조상들의 마음을 가득 채워주었을 것입니다.


다. 환단고기 속 '고시'와 농경 관리의 실제

환단고기 신사기 치화기에는 "고시(高矢)는 농사와 화식(火食)을 맡았다" 는 기록이 있습니다. 지탑리의 정교한 농기구 체계가 바로 이러한 관리 체계 아래에서 탄생했다고 믿습니다. 4대 주우양 환인 시대의 온난한 기후 는 농경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높였고, 이를 관리할 '고시' 와 같은 전문직책의 등장 을 불러왔을 것입니다.

감상 팁

박물관에서 돌보습을 보실 때 날 부분을 유심히 살펴보세요. 거울처럼 매끄럽게 닳아 있거나 미세한 긁힘이 일정한 방향으로 나 있다면, 그것은 수천 년 전 어느 농부가 땀 흘리며 땅을 일구었던 삶의 궤적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돌보습은 쟁기와 어떻게 다른가요?

돌보습은 쟁기의 날 부분에 해당하는 석기이며, 나무 자루를 연결하여 사람이 직접 밀거나 끄는 '인력경' 방식으로 사용되었습니다.

Q2: 지탑리 유적의 시기는 환국 시대와 맞나요?

지탑리 유적은 기원전 3500년 이전의 것으로 측정되며, 이는 환국 후기에서 배달국으로 전환되는 시기 와 일치합니다.

Q3: 당시 사람들은 주로 어떤 곡물을 먹었나요?

탄화 곡물 분석 결과 조, 피, 기장 등 한랭한 기후에도 강하고 영양가가 높은 잡곡류를 주로 재배하여 섭취했습니다.


마무리

황해도 지탑리의 돌보습은 7천 년 전 우리 조상들이 단순히 자연에 의지하는 단계를 넘어, 대지를 스스로 개척하며 문명을 일구었음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차가운 돌덩이 로 남아 있지만, 그 날에 새겨진 마모의 흔적 은 여전히 뜨거웠던 삶의 의지를 전하고 있는 것만 같아 보입니다.

핵심 정리

  • 본격 농경의 상징: 대형 돌보습은 한반도 초기 농경의 규모를 보여줍니다.

  • 생산 경제의 입증: 탄화 곡물과 수확 도구는 완전한 농경 체계의 증거입니다.

  • 사회 구조의 변화: 계획적인 농경은 환국 시대의 조직화된 통치 체계를 반영합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하는 밥상 위의 곡물 한 알이 7천 년 전 지탑리의 흙바닥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잃어버린 고대사의 진실을 향한 우리의 발걸음이 계속되기를 희망합니다.


참고 자료

  • 우리역사넷 - 신석기 시대 농경과 지탑리 유적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신석기시대 생업 및 돌보습
  • 환단고기 신사기 및 태백일사
  • 위키백과 - 신석기 혁명과 한국의 농경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 유적 발굴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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