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4. 평화적 권력 이양, 선양(禪讓)의 시대

2026년 1월 3일
수정 2026년 1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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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서를 읽다가 문득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한참을 머무르게 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환국의 1대 안파견 환인에서 2대 혁서 환인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의 기록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재위 기간이 수백 년이라는 비현실적인 기록에 매몰되어 그 이면에 숨겨진 거대한 평화의 가치를 보지 못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권력 투쟁'이라는 단어나 전쟁 기록 하나 없는 고결한 문장들을 볼 때, 7천년 전 우리 조상들이 가졌던 고도의 정치적 지혜가 눈부시게 다가오는 것을 느낍니다.

환국의 기록들을 분석하며 기원전 7197년부터 시작된 환국의 역사 속에 흐르는 가장 독특한 특징이 바로 무력이 배제된 '덕(德)의 계승' 이라는 사실에 전율하고 있습니다.


가. 전쟁의 기록이 지워진 3,300년의 침묵

환단고기 삼성기의 기록에 의하면, 1대 안파견부터 마지막 7대 지위리에 이르기까지 권력의 교체기에 전쟁이나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사실 지금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믿기 힘들 정도로 평화로운 이 기록은, 단지 "다음 환인이 즉위했다"는 간결한 문장으로 그 시대의 안정성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저는 만약 무력으로 권력을 찬탈했다면 후대의 기록자가 이를 굳이 삭제하거나 미화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이 평화적 이주승계의 기록이 지닌 진실성을 믿고 싶어집니다.

7대 환인이 다스렸던 3,301년의 기간 동안 내전이나 왕위 찬탈의 흔적이 없다는 것은, 당시 사회가 물리적 강압보다는 공동체의 합의와 도덕적 권위를 중심으로 운영되었음을 시사합니다.

핵심 포인트

환국 시대의 권력 이양은 전쟁이나 반란 대신 덕망 있는 후계자에게 자리를 넘겨주는 평화적 방식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나. 덕망으로 이어지는 선양, 요순시대의 원형

이러한 평화적 권력 이양은 동양 고대 정치의 이상향인 '요순 선양' 과 매우 흡사한 구조를 띠고 있습니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세습 제도가 정착 농경과 함께 확립되기 이전에는, 덕행이 뛰어난 인물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선양(禪讓)이 보편적인 방식이었습니다. 기원전 7000년대에 시작된 환국의 역사는 기원전 2300년경의 요순시대보다 무려 5,000년이나 앞서 이러한 선진적인 정치 문화를 구가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정착 생활이 시작되던 신석기 사회의 특징 으로 볼 때, 당시 사회는 경험 많은 연장자나 능력이 검증된 지도자가 부족을 이끄는 합의 중심의 사회였습니다. 삼국유사에서 환인이 환웅에게 '천부인 3개' 를 준 기록 역시, 찬탈이 아닌 정당한 권한 위임의 전통이 환국 시대부터 이어져 왔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대목'입니다.

[표 1: 시대별 권력 이양 방식 분석]

구분환국 시대 (기원전 7197년~)요순 시대청동기 이후
핵심 가치덕(德)과 공동체 합의덕(德)과 치수 공로무력 및 혈연 세습
이양 방식평화적 선양(禪讓)선양세습 및 왕위 찬탈
유물 특징농기구 및 어로구 주류기록상 전승살상용 무기 급증

다. 무기보다 농기구가 말하는 신석기의 평화

저는 유물들 속에서 이 평화의 실체를 다시 확인하고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암사동 유적을 비롯한 수많은 신석기 유적에서 출토되는 도구들은 대부분 농기구나 어로구이며, 살상용 무기는 지극히 드뭅니다. 암사동 유적에서 대량 출토된 갈판과 갈돌 과 대조적으로, 환국 시대의 유적지에는 대규모 방어 시설이나 전쟁으로 파괴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박물관에서 본 화살촉과 창은 대부분 짐승을 잡기 위한 수렵용이었습니다. 춘천 교동에서 발견된 의례용 대형 도끼 처럼 권위를 상징하는 물건은 있었을지언정, 그것이 동족을 해치기 위한 칼날로 쓰이지 않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릿해집니다.

감상 팁

박물관에서 신석기 석기를 보실 때 날 부분의 마모를 유심히 보세요. 나무를 베거나 땅을 판 흔적은 많지만, 사람을 공격하기 위한 대인용 무기는 청동기 시대 이전까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 평화의 증거입니다.


라. '환인'이라는 이름, 개인을 넘어선 시대의 직함

사실 1대당 평균 472년이라는 재위 기간은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하기에, 저는 '환인'이 개인이 아닌 왕조나 직책의 명칭이었을 가능성에 주목합니다. 로마의 '아우구스투스'처럼, 안파견이나 혁서라는 가문 의 이름 뒤에 지도자를 뜻하는 '환인'이라는 직함이 붙어 세대를 거쳐 계승되었을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이렇게 보면 평화적인 교체는 더욱 자연스럽게 다가오며, 기록의 유실로 인해 여러 통치자가 하나의 이름으로 묶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마. 천부인 수여가 상징하는 정당한 권한 위임

환웅이 환인의 허락을 받고 3천 무리를 이끌고 동방으로 이주했다는 기록 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은 반란이나 분리독립이 아니라 정당한 '권한 위임'이자 '이주와 개척'이었기 때문입니다. 환인이 환웅에게 준 천부인 3개는 정당한 후계자이자 개척자임을 증명하는 신표였으며, 이는 환국 전체의 질서 속에서 이루어진 평화로운 확장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472년이라는 재위 기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개인의 수명보다는 특정 부족 집단이나 왕조가 해당 명칭을 유지하며 통치했던 기간으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Q2: 정말 환인들 사이에 전쟁이 한 번도 없었나요?

환단고기 전체 기록상 환인 간의 전쟁이나 찬탈 기록은 단 한 건도 등장하지 않으며, 이는 당시 사회의 도덕적 합의가 매우 강력했음을 뜻합니다.

Q3: 선양과 세습은 어떻게 다른가요?

선양은 혈연과 관계없이 덕망과 능력을 기준으로 자리를 넘겨주는 것이며, 세습은 사유 재산 개념이 확립된 이후 혈연을 따라 권력이 이어지는 방식입니다.


마무리

환인 교체기 는 우리 역사가 가진 가장 평화롭고 지혜로운 덕치의 시대였습니다. 덕(德) 을 기준으로 지도자를 세우고, 천부인 이라는 상징을 통해 정당하게 권력을 위임했던 그들의 모습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묵직한 가르침을 줍니다.

핵심 정리

  • 평화적 이양: 전쟁 기록 없이 덕망 있는 후계자에게 권력을 물려준 선양의 시대였습니다.

  • 사회적 기반: 무기보다 농기구가 주를 이룬 신석기 유적은 기록의 평화성을 뒷받침합니다.

  • 정당한 위임: 환웅의 이주 역시 환인의 허락과 천부인 수여를 통한 평화적 개척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배우는 권력의 역사가 투쟁의 기록이라면, 7천 년 전 환국의 역사는 양보와 신뢰의 기록이었습니다. 마치 달리기 경주에서 다음 주자에게 바턴을 건네듯,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었던 조상들의 숭고한 정신을 우리 가슴 속에 다시 한번 새겨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참고 자료

  • 환단고기 삼성기, 태백일사
  • 삼국유사 고조선기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신석기시대, 부장품
  • 나무위키 - 선양(禪讓), 환국(桓國)
  • 우리역사넷 - 신석기 시대의 사회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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