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소실된 태백일사 환국본기, 잃어버린 7천 년의 기억
서가 구석에 덩그러니 남은 얇은 책 한 권을 보며 7천 년이라는 방대한 시간이 한 줌의 연기처럼 사라졌다는 사실에 가슴 한구석이 쓰린 기분만 남아있음을 느꼈습니다. 우리 옛 기록이 부족한 이유를 잘 몰랐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전부인 듯,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무지(無知)'가 '역사의 말살' 이라는 잔인한 진실 앞에서 이 땅 아래 묻힌 진실이 다시 찾아야 된다는 명분을 더욱 다지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고대 문헌들을 비교하며 기원전 7197년부터 시작된 환국의 시작 연도가 단순한 연대기를 넘어 우리 민족의 거대한 뿌리였음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태백일사 환국본기는 현재 매우 소략한 내용만 남아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가. 조선 왕조의 수압령, 유교 이념의 그늘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조 3년(1457년) 팔도관찰사에게 희귀 서적을 수집하라는 명목의 수압령이 내려졌습니다. 이때 수거 대상 목록에는 놀랍게도 『삼성기』 와 같은 고대 사서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서적 보존이 목적이라 믿고 싶었지만, 조선 왕조가 유교 이념을 국시로 삼아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던 태도를 고려하면 이는 유교적 세계관에 맞지 않는 독자적 고대사를 '괴력난신' 으로 치부해 통제하려 했던 의도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 지식인들은 단군조선을 신화로 취급하려 했으며, 그보다 앞선 환국이나 배달국의 역사는 아예 기록 자체를 무시하거나 배제했습니다. 이 시기 환국의 구체적인 통치 사례와 문명 수준을 담았던 상세한 기록들이 의도적으로 은폐되거나 소실되었을 가능성은 매우 높습니다.
핵심 포인트
환국본기 가 짧은 이유는 우리 역사의 뿌리를 유교적 사대주의와 식민 사관 이라는 틀에 맞추기 위해 체계적으로 기록을 말살하고 왜곡 했기 때문입니다.
나. 일제강점기, 20만 권의 서적이 태워지던 밤
일제 는 한국을 지배하기 위해 우리 역사를 타율적이고 정체된 것으로 재구성하는 식민 사관 을 강요했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증언에 따르면, 일제는 조선총독부를 통해 무려 51종 20여만 권의 조선 사서를 수거하여 소각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인이 자신의 역사를 알게 되면 독립운동이 확대될 것"이라며 역사를 왜곡하려 했던 발언 은 지금 들어도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 듭니다. 7대 환인이 3,301년 동안 다스렸던 기간 에 대한 상세한 사건들과 사회 구조가 담긴 원본 기록들도 아마 이 시기에 영원히 사라졌을 것입니다.
[표 1: 시대별 역사 서적 소각 및 탄압 현황]
| 시기 | 주체 | 주요 방법 | 목적 |
|---|---|---|---|
| 1457년~ | 조선 왕조 | 팔도 수압령 발동 | 유교 이념 외 이단 사상 통제 |
| 1910~1945 | 일제 | 20만 권 서적 소각 | 한민족 정체성 말살 및 식민 지배 정당화 |
| 현대 | 중국 | 동북공정 (동북 지역 연구 통제) | 요하 문명 등을 중국사로 편입 |
감상 팁
환단고기가 1911년에 편찬된 배경을 이해해 보세요. 일제의 역사 말살 이라는 위기 속에서 계연수가 사라져가는 고대 사서들을 묶어 우리 혼을 지키려 했던 절박한 시도였습니다.
다. 잃어버린 기록 속에 담겨 있었을 문명의 실체
만약 환국본기가 온전히 보존되었다면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었을까요? 수메르나 이집트 문명처럼 상세한 행정 기록과 12연방 간의 교류, 그리고, 천문 및 역법 에 관한 고도의 과학 지식이 담겨 있었을 것입니다.
홍산문화와 요하 지역의 고고학적 유적 에서 발견되는 고도의 옥기 기술과 제단 구조는 환국 문명이 단순한 원시 부족 사회가 아니었음을 간접적으로 증명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실체를 밝혀줄 문헌의 상당 부분이 소실되었습니다. 환국의 중심 지역인 바이칼과 파미르 고원 등이 현재 타국의 영토 에 속해 있어 연구에 큰 제약이 따르는 상황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환국본기가 왜 이렇게 짧게 남았나요?
조선 시대의 유교적 억압과 일제강점기의 대규모 서적 소각을 거치며 3,300년의 역사를 기록한 방대한 문헌들이 대부분 사라지고 핵심적인 줄기만 남았기 때문입니다.
Q2: 소실된 기록을 복원할 방법이 있나요?
완전한 복원은 어렵지만, 고고학적 발굴 데이터와 인접 국가의 고대 기록을 교차 검증하고 유전학, 인류학 등 학제간 연구를 통해 실체를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Q3: 주류 사학계는 왜 이를 외면하나요?
원본 미확인과 시대착오적 표현을 이유로 들지만, 그 이면에는 일제 식민 사학의 영향으로 굳어진 경직된 연구 태도와 편견이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마무리
태백일사 환국본기의 소실은 단순한 책 한 권의 분실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찬란했던 7천 년 기억을 도둑맞은 사건입니다. 비록 기록은 짧게 남았지만, 흩어진 조각들을 모으고 고고학적 증거로 이를 입증하는 과정은 우리 역사의 진실을 복원하는 숭고한 여정이 될 것입니다.
핵심 정리
역사적 말살: 조선의 수압령과 일제의 서적 소각으로 상세 기록이 인멸되었습니다.
기록의 빈자리: 소략한 환국본기에는 원래 고도의 행정 및 과학 지식이 담겨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복원의 희망: 타국 영토 내 유적에 대한 국제 공동 조사와 최신 과학적 분석이 절실합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기록의 아픔을 기억할 때, 땅속에 묻힌 진실은 비로소 우리에게 다시 말을 걸어올 것입니다. 잃어버린 7천 년의 기억을 되찾는 일,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뿌리를 찾는 첫걸음입니다.
참고 자료
- 환단고기 태백일사 환국본기
- 조선왕조실록 세조실록(1457년 수압령 기록)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수압령 및 고대사 인식
- 신채호, 『조선상고사』 - 일제 사서 소각 관련 기록
- 국립중앙박물관 - 고고학적 연대 및 유적 분석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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